순교자료4 1 페이지 | 예수사랑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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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료4

본문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한 사람들의 순교록

그리스도교는 피로 증거된 교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제국의 박해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197년에 테르툴리아누스는 그의 저서 《호교론》 50장 13항에서 “순교자들의 피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다”라고 역설하였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시작하여 300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 동안 수많은 신자들이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는 더욱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게 된 것은 처음부터 교리를 배워서가 아니라 혹독한 고문을 이겨내고 가장 소중한 자기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는 순교자들을 목격하면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믿고 있기에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그리스도교가 도입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반복되었으며, 특히 100년 이상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이 혹독하게 지속되었던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 순교록의 기원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묘지를 자주 참배하여 그들의 영웅적인 삶을 회상했으며, 이것을 기록에 남기기 시작하였다. 초기교회의 순교자들에 관한 이런 기록들 즉 순교록들은 엄청나게 많이 전해오고 있다. 순교록은 해당 순교자의 기일에 전례 중에 공동체 앞에서 읽혀지곤 했다. 순교록은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의 신앙고백과 영웅적인 용기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삶에 대한 기록이므로 모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평화시대에는 순교자의 기일에 그들을 추모하는 행사, 예컨대 순교 현장 또는 묘소를 방문하거나 성당에 모여 전례를 거행하게 되었다. 이로써 순교한 날을 순교자의 ‘천상 탄일’로 여겨 축일을 정하는 전통이 교회 안에 생겨났다. 이것은 순교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순교자를 바로 천당으로 데려가신다는 교회의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물로 세례[水洗]를 받지 않은 예비신자가 순교하더라도 피의 세례[血洗]를 받아 구원을 받게 된다고 믿었다.



- 순교록의 유형

순교자들에 대한 이러한 공경과 그들의 모범적이고 영웅적인 삶 때문에 순교자들에 관한 사료나 이야기들은 초기교회부터 수집되기 시작하였다. 순교록은 그 출처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사형을 집행한 행정기관의 공식 문서 즉 실록實錄이다. 여기에는 체포와 재판 기록, 심문 조서, 사형 선고문, 처형 기록 등이 포함되며, 공적 문서이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문서들은 관공서의 역사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이를 복사하려 하였다. 이 부류에 속하는 실록을 일반적으로 ‘행적’이라 부른다. 이에 속하는 문헌은 <성 유스티누스 행적> <쉴리움 순교자들의 행적> <성 치프리아누스 행적> 등이 있다.

둘째, 순교의 목격자나 동시대인의 증언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순교록’ 또는 ‘수난기’라는 제목이 붙은 것들이다. 첫째 부류가 박해자인 당국 측에서 행정적인 문체로 기록된 것이라면, 둘째 부류는 처형을 지켜본 신앙의 동료들의 증언이기 때문에 박해의 가혹함과 순교자의 신앙고백, 그들의 영웅적인 용기가 부각되어 있다. 이에 속하는 문헌들은 순교에 관한 역사성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감동적인 교훈을 주므로 신자들에게 애독되었다. 이에 속하는 문헌은 <폴리카르푸스 순교록>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의 수난기> <카르푸스, 파필루스, 아가토니체의 순교록> <아폴로니우스 순교록> 등이 있다.

셋째, 후대에 순교자에 관한 여러 구전이나 전설들을 모아 신자들의 신심과 교화를 위해 이야기 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중에 어떤 것들은 역사적인 사실들에 저자의 상상력을 가미시켜 멋진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 식의 순교록은 나름대로 독특한 문학유형을 지닌다. 예컨대 재판관이 몇 마디의 질문을 하면 순교자는 거의 종교강의 또는 강론조로 대답하면서 신앙의 원리를 제시하고 설명한다. 이에 속하는 문헌으로는 성녀 아녜스, 성녀 체칠리아, 성 히폴리투스, 성 라우렌씨우스, 성 식스투스, 성 세바스티아누스, 성 요한과 바울로, 성 고스마와 다미아노의 순교록 등이 있다.

수많은 순교록들 중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의 수난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수난기는 레보카투스, 사투르니누스, 세콘디누스,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등 5명의 예비신자들이 감옥에서 세례를 받고 순교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그들에게 몰래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준 교리교사는 사투루스였다. 그런데 이 수난기의 대부분은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의 수난기>라고 일컫는다.

페르페투아는 젖먹이를 둔 22세의 젊은 어머니로 양친과 두 오빠가 있으며 교양 있는 훌륭한 집안의 출신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의 여종인 펠리치타스는 임신한 몸으로 체포되어 순교 직전에 한 여아를 출산하였다. 이들은 모두 202년 3월 7일 카르타고의 원형극장에서 순교했다. 이 수난기는 고대 그리스도교 문학에서 가장 훌륭한 것 중에 하나로 꼽힌다. 페르페투아의 개인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 3∼10장은 이 문헌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11∼13장은 교리교사 사투루스에 관한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테르툴리아누스가 이 작품의 저자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수난기는 5세기까지 신자들에게 권위 있게 읽혀졌으며,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자들에게 이를 성서 정전목록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각별한 주의를 주어야 할 정도였다.(영혼론 1,10,12)

이 수난기는 초기교회의 몇 가지 중요한 사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특히 페르페투아가 감옥에서 본 환시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디노크라테스의 환시, 계단의 환시, 용의 환시 등은 좋은 예들이다. 여기서 순교는 두 번째의 세례로 표현되어 있다. 성체를 영할 때 페르페투아는 착한 목자의 환시를 본다.



- 효심과 모정까지 뛰어 넘는 신앙의 증거

이 수난기는 당시 박해에 관해 전해오는 문헌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것이다. 페르페투아가 아버지를 만나 대화하는 대목에서 아버지는 배교를 애원하고, 신앙 때문에 딸이 인간적인 정을 끊는 모습은 순교가 무엇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며칠 후에 우리는 곧 심문을 받게 되리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통에 짓눌려 시내에서 달려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생각을 바꾸려고 내게 매달리면서, “내 딸아, 백발인 내가 불쌍하지 않느냐. 내가 너의 아버지로 불리기에 합당하다면 나를 좀 불쌍히 여겨다오. 네가 성장할 때까지 내가 너를 안아 키웠고, 그 후에도 모든 자식 중에 너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였는데 모두가 나를 멸시하지 않도록 해다오. 네 오빠들, 네 어머니와 네 이모를 생각해다오. 네 아이를 생각해보아라. 네가 없으면 그 애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제발 네 생각을 바꾸어다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망해서야 되겠느냐. 네가 처형당하면 우리 중에 아무도 더 이상 자유롭게 살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손에 입을 맞추고 발 앞에 엎드려 우시면서 ‘내 딸아’ 대신에 ‘마님’이라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겪게 될 운명 때문에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가족 중에서 아버지 한 분만이 내 순교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저 단상 위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의 운명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식사하고 있을 때 심문을 받기 위해 이송되어 갔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법정에 도착했습니다. 법정 근처에 다다르니 소란스러웠습니다. 한 사람씩 심문을 받자 모두들 “그리스도인입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내 아이를 팔에 안고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따로 끌어당기며 “제발 네 아기를 불쌍히 여겨 제사를 바쳐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총독 힐라리아누스가 나에게 “자, 네 부친의 백발을 아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네 아이의 어린 나이를 아껴야 하지 않겠느냐. 황제들의 안녕을 위하여 제사를 바쳐라” 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안됩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가 다시 “너는 그리스도 신자이냐?” 하고 묻자 “예, 그리스도 신자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아래로 잡아 끌어내리려 하자, 힐라리아누스는 아버지를 단상에서 끌어내어 매로 치라고 명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늘그막에 이렇듯이 불행을 당하시는 것에 괴로웠습니다. 재판관은 판결문을 낭독하였고 우리 모두에게 맹수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기쁜 마음으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자료출처: http://www.dsum.co.kr/0203th-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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